임진왜란 내내 조선수군은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이 이끈 칠천량 해전 빼고 단 1번도 패배하지 않았습니다.일본 전쟁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임진왜란 전인 일본 전국시대 내전 오다와라성 전투에서도 일본수군이 안택선에 화포를 장착하고 포격전을 벌인 것을 보면 일본인들도 해상 포격전에 대한 구상을 했다는 점과 임진왜란 때 조선수군을 만나 대패한 적이 많은 점을 고려해봤을 때 일본 함선도 조선수군처럼 측면에 화포를 정방향으로 여러 문 장착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일본의 기록에도 "조선수군과의 한산도 부근 해전 패배 후 배를 만들 나무가 부족해 전국에 쌀값이 폭등했다." 라는 기록이 있는 것을 확인해봤을 때 일본수군도 백병전 뿐 만이 아니라 원거리 포격전을 구사했다는 기록도 존재하는데 어째 일본수군은 조선수군을 만나는 족족 모두 패배했을까요?충무공께서도 적들이 우리 수군의 장점을 충분히 알기 때문에 그들도 대비를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셨을텐데 어떻게 노량해전 빼면 아군 전사자 수가 10명 단위일까요?충무공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임진년 내내 8만 명의 일본 수군을 물귀신으로 만드셨던데
조선 수군의 승리는 지휘력, 무기, 전략, 육군과의 협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결과라고 볼수 있습니다.
조선 수군이 임진왜란 등에서 늘 승리한 주된 이유는 이순신 장군의 전략적 지휘, 거북선 등 우수한 무기체계, 그리고 일본군의 해상 보급로 차단에 있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 지휘: 이순신 장군은 남해안 방어, 일본군 정보 수집, 학익진 등 창의적 전술과 첩보전을 통해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 일본군에도 수군의 명장들이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에게 전략적으로 다 대패함.
거북선 등 첨단 무기체계: 거북선과 판옥선 등 튼튼한 전함과 화포, 학익진 전술로 일본 수군에 비해 우위를 점했습니다.
일본군 보급로 차단: 조선 수군이 남해와 서해 해상로를 장악해 일본군의 군수 보급을 차단, 장기전에서 일본군을 고립시켰습니다.